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아름다운 금융??- 2012. 11. 23.

jaykim1953 2012. 11. 23. 09:51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를한 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정치 구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항하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해공 신익희 선생이 내걸었던 정치 구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습니다. 이 구호 한 마디의 파괴력은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들어서 못살겠다라는 말에 동조하였나 봅니다. 그에 대응하는 자유당의 구호는, ‘갈아봤자 더 못산다였습니다. 이 구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의 아류 취급을 받았습니다. 정치구호로서의 파괴력은커녕 오히려 여러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일부 학자들이 검토한 바에 따르면, 여러 가지 여건이 너무나도 열악하였던 당시로서는 실제로 갈아봤자별 뾰족한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짧은 한 마디로 사람들의 심금을 파고드는 정치 구호로서의 평가에서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성공작이고 갈아봤자 더 못산다는 졸작으로 남았습니다.

금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여서 인지 이곳 저곳에 새로운 정치 구호들이 눈에 띕니다. 여러 가지 구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단어의 조합도 있습니다. 의미가 불분명한 구호, 앞뒤가 맞지 않는 구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좋은 단어들이지만 이들을 한데 묶어서 만드는 경우에 그 의미가 불분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그런 모양입니다. 무엇인가 그럴듯한 말들을 알게 되면 그 것들을 조합하여 무엇인가 더욱 멋 있고 세련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고 싶어지나 봅니다.

예를 들어 민주적 자본’, ‘아름다운 금융등의 구호를 보면 언뜻 듣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는 정확히 무엇을 표현하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이런 구호는 실제로 쓰이는 구호는 아니고 제가 가상으로 상상해 본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충분히 있을 수 있으며, 이와 유사한 구호가 쓰이고 있습니다.)

민주적 자본이라는 말을 살펴보면, 자본은 경제행위에 필요한 자원이지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한 도구로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개인 인격의 권리가 균등함을 기반으로 하나, 자본주의는 자본- , 돈의 가치를 증식하는 데에 쓰이는 자원으로서의 개념이 자본주의의 근간입니다. 물론 돈의 각 단위가 가치를 증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은 균등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자본의 가치를 어떻게 얼마나 더 증식시킬 수 있는가에 더 주목합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이념과 자본주의라는 경제 이념을 접목시키는 것은 어색한 결과를 낳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사유재산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 민주라는 단어를 앞세워 자본의 공공성 (또는 사회주의적 개념)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경제의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금융이라는 표현 또한 유사한 경우입니다. 가치 기준이 아름답다는 것은 예술에서 중요시 하는 것이지 금융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예술이 추구하는 가치를 금융에서 찾으려는 것은 무리입니다. 금융은 돈의 가치를 시간적 또는 공간적인 방법으로 이전하는 것’ (to transfer value of money by means of time and/or space)이라는 개념에 비추어 보면 금융의 성격은 지극히 효율중심적이고 계산적인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개념과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금융의 개념에 따르면 돈의 가치를 시간적으로 이전하는 예금, 대출 등의 상품과, 공간적으로 이전하는 송금, 외환, 수출입 금융 등의 상품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품을 매끄럽게, 금융 소비자가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만드는 것에 금융의 가치가 있습니다. 금융 상품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금융의 관점에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10여년 전에 한 때 value at risk 라는 개념이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Value at risk란 과거의 리스크 기록에 견주어 현재의 보유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평가한 것입니다. 리스크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이용 가치가 있고 호평을 받았던 개념입니다. 리스크 관리란 미래에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관리이지만 그에 대한 근거 자료는 어차피 과거의 자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므로 value at risk의 쓰임새는 충분히 인정 받았습니다.

Value at risk 라는 개념이 한창 시장에서 주목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리스크 관리를 수치화, 계량화하는 것을 원하던 제 고객사의 최고경영자 한 분이 제게 요청한 것들 가운데 이러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시장 리스크와 신용 리스크 등을 모두 따로따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를 하나의 수치로 종합하여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 주시오.”

이 요청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시장 리스크는 시장에서 채권 금리, 유동성 등의 변화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고, 신용 리스크는 채권 발행사의 신용등급이 변동하게 되면 채권의 가격이 변동하게 되는 리스크(이를 migration risk라고 합니다)입니다. 이 두 리스크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리스크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 CEO의 요구는 서로 다른 이 두 리스크를 하나의 수치로 표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둘을 어떻게 한데 묶어서 표현을 하여야 할지 저로서는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해 드린 답변은; “체온과 혈압은 서로 다른 수치입니다. 체온과 혈압을 단순히 더한다고 하여도 아무런 의미 있는 값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시장 리스크 측정치와 신용 리스크 측정치를 합산한다고 의미 있는 수치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혹시 그 동안 세상이 바뀌어서 의사 선생님들이 체온과 혈압의 수치를 함께 적용하여 나타내는 새로운 지수를 개발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두 수치를 더해 보아야 별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장 리스크와 신용 리스크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더한다고 하여도 그 결과로 나온 수치가 그리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08년 신용위기 때처럼 신용 리스크로 인하여 전체 시장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 신용 리스크와 시장 리스크의 상관관계(correlation)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개 기업이, 또는 금융기관이 부담하고 있는 신용 리스크와 시장 리스크를 의미 있는 하나의 수치로 묶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결과 수치가 크게 의미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리스크 관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부 고위 경영층이 한 마디로 회사의 리스크를 나타내기를 원하는 사례에 불과합니다.

리스크 관리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각도로 조명하고 분석하고, 과거의 데이터에 대입하여 보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포트폴리오에서 손실이 날 가능성이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에 한 마디로 대답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포트폴리오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매우 많습니다. 금리, 주가 등의 변동에 의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시장 리스크, 채권인 경우 발행자가 파산, 부도 등으로 원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과 신용등급의 변동에 따른 가격 하락 가능성 등 신용 리스크, 법률, 규정 등의 변경으로 인한 원리금 상환 규모, 시기 등이 늦어질 가능성을 나타내는 규정 관련 리스크(regulation risk) 등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야 합니다.

규정 리스크를 이야기할 때에 드는 예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1972년의 ‘8.3.조치입니다. 8.3 조치의 정식 명칭은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대통령의 긴급명령이고 주요 내용은 국내 기업에 빌려준 모든 사채를 일시에 동결하여 은행에 등록하여야 하고 등록하지 않은 사채는 기업이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등록된 사채는 은행 대출 금리를 적용하고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하도록 하였습니다. 일시에 이자율이 1/3로 줄어들어 기업에게는 구세주, 사채 이자로 생활하는 전주(錢主)에게는 재앙과 같은 조치였습니다. 이러한 법률, 규정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리스크가 규정 리스크이고 이러한 가능성도 감안하여야 합니다.

제가 80년대 초 미국에서 근무를 하며 연수를 받던 당시에 제 스승(요새 말로 멘토; mentor)이었던 Dr. Townsend Walker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최선의 리스크 관리는 사람이 직접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확인하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컴퓨터 시스템이 발달하여 많은 자료를 일시에 처리하는 편리함이 발달하고 그로 인하여 value at risk와 같은 새로운 개념도 도입되었으나, 그래도 역시 가장 좋은 리스크 관리 방법은 사람이 직접 한 건 한 건 살펴 보는 것입니다. 리스크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고려할 것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리스크는 정치 구호 외치듯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리스크에는 복잡한 원인과 결과들이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금융은 경제논리, 금융의 논리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술의 잣대를 들이대어 아름다운 금융을 추구한다거나, 정치의 논리를 적용하여 민주적 금융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금융은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나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 금융 전문가의 손에 맡겨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경제와 금융에 관하여 딱 잘라 한 마디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더 이상 시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