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3.1절 단상- 2013.2.28.

jaykim1953 2013. 2. 28. 11:47

 

이번 주 금요일은 3.1절이어서 공휴일입니다. 그래서 금요일 모닝커피를 하루 먼저 배달합니다.

 

3.1 절은 1919년 우리 민족이 일제에 항거하여 비폭력 저항을 한 만세 운동의 기념일입니다. 그리고 제게는 개인적으로 또 다른 기억이 있는 날입니다.

 

1968 3.1절은 지금의 광화문 동쪽에 있는 광장- 당시의 중앙청 동쪽 광장-에서 저희 선친께서 독립유공 훈장을 받으셨던 날입니다. 45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월요일 2 25일 저희 선친께서 돌아가신 지 만 30년이 되는 기일이었습니다.

 

저희 선친에 대한 저의 추억은 누구 못지 않게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입시에서 한 번 낙방하였습니다. 1965 12 7일 중학교 입시를 보았고, 12 12일에 발표를 하였습니다. 제가 중학교 입시에 떨어진 것을 아시고는 저희 선친께서는 말 없이 저를 차에 태우시고 창경궁 (당시의 창경원- 동물원)으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12월 한겨울의 동물원에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스산하기조차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저희 선친께서는 제 손을 꼬옥 잡고 당신의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 저와 함께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희 선친께서 경험하셨던 여러 어려움과 절망감 등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격려의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윤봉길 의사 의거에 연루된 혐의로 일제의 감옥에 10년을 갇혀 계셨고, 그 기간 동안에 집안의 어른들- 어머니, 작은 아버지-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저희 선친은 유복자셨으니 태어나실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안 계셨고, 큰 집으로 양자 가셨다가 12살에 양아버지 상을 치르고 상해로 작은 아버지에게 다시 양자를 가셨던 것인데, 작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집안의 어른들께서 모두 돌아가시니 그야 말로 사고무친, 의지할 곳이 없으셨답니다. 게다가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 이름 지어진, 일본 사람들의 눈에는 우범자 수준의 사람으로 분류되어서 예비구금 (죄를 짓지 않더라도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높아 미리 가두어 두는 것)으로 감옥에 갇혀 계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재산이 제대로 남아 날 턱이 없었다고 합니다.

 

집안 어른도, 남겨진 재산도 없이 감옥에 계셨으니 얼마나 절망적이었을는지 추측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일제의 감옥에서 풀려 나오신 선친께서는 집안을 일으키고 저와 저희 형제들을 낳아 가정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까짓 거 중학교 한 번 떨어진 게 대수냐. 툭툭 털고 일어나라. 네 인생은 아직 창창하고 갈 길은 멀다. 기운 내라. 너희 아버지는 감옥에 10년 넘게 갇혀 있었고 모든 것을 다 잃었는데도 이렇게 다시 일어섰다.’

 

저는 아직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제 손을 잡아주시던 아버지의 손, 따뜻하던 아버지의 코트 주머니.

 

저는 후기 중학교 입학시험에 무사히 합격하여 중학교 3년을 마치고 이어서 학업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저희 선친의 위로와 격려가 큰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15~6년 간 두 번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7~8 년의 소위 IMF 경제 위기를 겪었고, 2008년의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에게는 손을 잡고 따뜻한 코트 속에서 손을 녹여주며 위로의 말을 전해주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1997~8년에는 우리나라의 경제에 모진 회초리를 때리는 IMF가 있었습니다.

 

회초리를 맞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마치 3.1 만세운동을 하듯이 분연히 일어나 금 모으기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때에 모은 금으로 외채를 실제로 갚을 수 있었느냐에 대하여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국민운동을 통하여 마음을 다져 먹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가 경험한 가장 큰 교훈은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일은행 눈물의 비데오’(금요일 모닝커피 2012. 4. 27. ‘2의 인생 경력참조: http://blog.daum.net/jaykim1953/62)로 대표되는 구조조정을 경험하며 방만한 은행 경영의 결과를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2008년의 금융위기 때도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어려움을 헤쳐 나왔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두 가지 대응이 가능합니다. 첫 째는 따뜻한 위로, 둘 째는 매서운 질책입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제게 따뜻한 위로를 하여 주셨습니다. IMF는 우리 국민들에게 매서운 질책을 하였습니다.

 

금융에서도 위로와 질책이 있습니다. 따뜻한 위로에 해당하는 것은 리스케줄링 (rescheduling)이고 가장 가혹한 질책에 해당하는 것은 압류 (foreclosure) 입니다.

 

리스케줄링은 기존의 부채 상환 계획을 수정하여, 현재의 어려운 시기에는 상환을 유예하여 주고, 앞으로 형편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상환을 뒤로 미루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채무의 일부를 탕감 (write off) 하여 줄 수도 있습니다. 당장의 부채 상환 부담을 줄여서 재기의 의지를 북돋워 주고 기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채무자의 윤리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당장의 어려움을 덜어주면 그것을 발판으로 갱생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치 저희 선친께서 제게 기운 내라고 북돋워 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압류는 담보권의 강제집행입니다. 채무자의 채무 상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채권 확보를 위한 강제 조치를 집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매로 나온 부동산들은 거의 모두 담보권의 강제집행으로 인한 압류의 결과물입니다.

 

채무 변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소비자에게 어떤 조치를 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질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마냥 온정을 베풀어서 계속 리스케줄링을 하여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압류만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신용불량자의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신용불량자의 채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서는 따뜻한 위로와 가혹한 채찍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 신용불량자의 재활을 돕는 것은 금융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에 대한 구제와 선도는 사회정책으로 해결하여야 할 것입니다.

 

부실 채권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리스케줄 될 수도 있고, 압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금융의 관점에서는 금융기관의 손실이 커지지 않는 방향으로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뜻한 위로와 가혹한 질책 사이의 선택을 위한 현명한 결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