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1980년을 회상하며...- 2016. 8. 5.

jaykim1953 2016. 8. 5. 13:57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한 때는 낯설게 느껴지던 엘니뇨, 라니냐와 같은 용어들도 이제는 제법 자주 듣다 보니 익숙해진 듯 합니다.

이런 더위 속에서 해외로 휴가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천 공항은 북적 이는가 하면 많은 시민들은 긴축예산으로 여름휴가를 넘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2016 바캉스 짧고 얇게)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였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빠지지 않고 즐겨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애써서 한여름 휴가철에 고생스러운 피서를 나서지 않으려고도 합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저도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시원한 사무실에서 잠시 옛날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은 1978년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한창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하여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로 중동 지방으로 진출한 해외 건설 붐을 맞아 해외 일자리가 늘어나고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는 부작용은 있었으나 시중에는 자금이 넘쳐나고 경기는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여름휴가철에는 해변과 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 당시 상황을 잠시 되새겨 보면 이자율은 공금리가 거의 20% 수준이었습니다. 공금리란 그 당시 은행 대출이자율을 말하는 것으로서 주무 정부기관인 재무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중앙정부인 한국은행이 재할인율을 조정하면서 모든 국내 은행들이 똑 같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비우대 금리 연() 19 %, 우대 금리 연 18.5 %와 같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이 당시 비우대 금리와 우대 금리의 차이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20%를 육박하는 금리 수준에서 0.5%의 금리 차이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 기업이며 최고 수준의 기업이었던 현대건설이 비우대 금리를 적용 받아야 했습니다. 1978~79년경으로 제가 기억합니다. 현대건설은 해외 건설 현장이 무척 많았습니다. 연말 결산을 하려면 공인회계사들이 공사현장을 일일이 방문하여 현장 실사를 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현대건설에서 이에 협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공인회계사의 감사의견이 나올 수 없어 재무제표는 무의견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현대건설에서 최고 경영자의 생각으로는; 감사 결과가 무의견으로 나오게 될 때의 불이익과 현장실사 비용과의 비교 결과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감사의견이 없으면 은행 대출에서 비우대 적용을 받게 되어 금리가 비싸지는 불이익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현대 건설의 은행 대출에 0.5%의 가산 금리를 추가 부담하는 것이 불과 수억 원에 불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최고 경영층에서는 감사의견이 무의견으로 나오는 불이익이 대수롭지 않으니 이를 감수하기로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그 당시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시가 총액은 약 2조원 수준이었으며 회사채와 국공채 발행 규모 역시 2조원을 겨우 넘어 서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건설은 1984년에 주식시장에 상장되었으므로 주식이 상장되기 전이었습니다.

1970년대말에서부터 198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의 금리는 춤을 추었습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사회적 혼란에 따른 경제 침체가 있었습니다. 1980년 역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 당시 GNP기준으로 전년 대비 약 6%의 경제 위축이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에도 심한 여름 불황을 겪었습니다. (관련기사: 1980/6/21_여름불황)

19801월 우리나라에서는 충격요법을 통한 금리, 환율의 급상승이 있었습니다.  이 때에 은행의 대출이자율은 일반대출 연 19%에서 연 25%, 우대 금리 연 18.5%에서 24.5%로 인상되었습니다. (관련기사: 1980/1/12_환율,금리 대폭 인상) 회사채 발행 금리는 연 30%였으며 이는 그 때까지는 역대 최고 금리였습니다. 그러자 기업들이 자금비용 부담이 너무 높다고 아우성을 하여 1980 6월 들어 정부가 회사채 금리를 2% 포인트 낮추어 연 28%로 책정하였습니다. (관련기사: 1980/6/9-매경-대출금리인하조정)

그러나 실제 시장금리는 이러한 명목 금리보다도 더 높아서 채권 유통시장이나 사채 시장의 금리는 가히 살인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중에서 회사채의 수익률은 30%를 넘나드는데 은행에서 기업을 상대로 24.5~25%의 이자를 받고 대출해 줄 리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근무하고 있던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에서는 두 가지 대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대안은 채권 투자였습니다. 회사채는 신용도의 문제가 있었으므로 국공채에만 투자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국공채 시장 규모는 약 9천억원 ~ 1조원 수준이었습니다. (자료: 한국은행 발행 Financial System in Korea, 1985. 9.)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에서는 하루에 1~2백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하였습니다. 그 때 저와 거래를 가장 활발하게 하였던 D 증권의 K차장의 말에 따르면 “BOA 가 국공채 시장의 씨를 말린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은행이 약 3 주일 동안 20번쯤 계속 매입을 하여 투자 규모가 2~3 천억 원에 이르자 채권 수익률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근무를 하였고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저희는 채권 매입을 중단하였고, 1980 6월 금리 인하로 인하여 채권 가격이 상승하면서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시장금리와 명목 금리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Bank of America 서울지점에서 또 한 가지 대응방안으로 택한 방법은 구속성 예금 혹은 양건예금(兩建預金)이라 불리는 compensating balance 였습니다. 이는 대출을 하면서 대출금의 일부를 예금으로 적립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서 대출을 받아가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출금 가운데 일부가 묶이게 되어 실제 대출금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실효 이자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이자율 25%에 대출하고 1천만 원을 이자율 1%에 예금으로 적립하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금 1억원 지급, 예금 1천만 원 수수; 실지급액 9천만원

대출이자 연 25백만원 수입 (1억 원 X 25%)

예금 이자 연 10만원 지출 (1천만 원 X 1%)

결과적으로 9천만 원 대출에 수익은 2 490만원, 실효 이자율 27.67%

상대적으로 기업에서는 25%의 명목 대출이자율을 지급하지만 실제 대출금액은 줄어들고 실효 이자율은 27.67%로 상승하게 됩니다.

요즈음과 같이 각 금융기관이 이자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금융소비자에게 정확한 이자율을 제시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이러한 양건예금을 요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시장 실세 금리와 정부가 요구하는 명목 금리의 차이 때문입니다. 지극히 단순한 원리 가운데 하나인 시장을 통제하면 암시장(暗市場)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정부는 이자율을 통제하였고 모든 금융기관에게 모든 대출과 예금에 상품별로 동일한 이자율을 적용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결국 시장에서는 이를 피해 가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채권 투자와 양건예금의 문제는 외국은행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관련기사: 1980/6/24-양건예금 실태조사) 시장의 실세금리와 명목금리의 괴리는 외국은행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금융기관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였고 그들이 택한 해결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980년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 금융시장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금리도 금융기관에서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 금리를 그대로 금융상품에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완전한 자유 시장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비록 날씨는 덥고, 경제는 어렵다고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우리의 금융시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갖고 이 더위를 이겨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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