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밥 값- 2017. 2. 24

jaykim1953 2017. 2. 24. 09:45


내일 (2 25)은 저희 선친의34주기(週忌)입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주변 분들도 기일을 기억하고 인사도 건네는 분이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세월이 흘러 저희 선친의 기일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1994년의 일입니다. 그 해는 저희 선친의 11 주기가 되던 해였습니다. 2월 말이나 3월 초쯤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께서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예전에 저희 선친의 회사에서 일하시던 옛 직장 동료 몇 분께서 그 해가 저희 선친 10주기인 줄로 잘 못 알고 연락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10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는 11주기 즈음에 저희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저녁을 한 번 대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 의사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저는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와 상의 끝에 저희 선친의 사무실이 있었던 예전의 반도호텔을 생각하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지금은 롯데 호텔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 롯데 호텔의 부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약속 자리에는 그 당시 사내 결혼을 하였던 부부 두 분과, 자신의 동생들을 돌보느라 결혼을 미루다가 혼기를 놓쳐 결국 결혼을 포기하신 여자 한 분, 남자 직원 한 분, 그리고 임원이셨던 분- 성 상무님-도 나오셔서 모두 5 분의 옛 직원 분들과 저희 어머니 그리고 저까지 7 사람이 식사를 함께 하며 옛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식사를 즐겼습니다. 제 선친을 대신하여 제가 식사 대접을 하는 것으로 하여 비용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리고 과천에 살고 계시던 제 어머니는 제 회사차로 저의 운전기사가 모셔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마침 안양 쪽에 살고 계시던 성 상무님도 어머니와 방향이 같아 함께 차를 타고 가셨습니다. 저는 혼자 제 차를 타고 직접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어머니는 아주 흡족해 하셨습니다. 예전의 직원분들에게 식사 대접을 해 주셨다는 것을 뿌듯해 하셨습니다. 비록 저희 선친께서 사업이 부진하여 회사 문을 닫는 상황을 겪기는 하였으나, 시간이 흐른 뒤 예전의 직원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음을 고마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서 어머니께서 식사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을 대접해 주셨다는 것을 더욱 고마워하셨습니다.

얼마 전 제 대학교 동창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 모임에서 친구 A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예전 내 직장 상사는 지금은 나이 70을 갓 넘겼는데 이따금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내게 전화를 해. 그리고 점심을 같이 하면 돈 낼 생각을 안 해. 결국 내가 내지. 그런가 하면 예전 내 후배 직원들도 이제 50대 후반, 60대 초반인데 직장에서 물러났다며 이따금 전화 연락을 하는데, 이 사람들도 밥 먹고는 밥 값을 낼 생각들을 안 해. 그래서 또 내가 내야 해.

A는 특별히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젊어서 근면하게 일하고 알뜰히 아껴 써서 지금도 그리 부족한 것 없이 단란하게 살고 있기는 합니다. A는 최근까지도 예전 거래선이었던 회사에서 고문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한 거래선이 A가 대기업에서 일할 때부터 관심 있게 보고 있다가 그가 퇴직을 하자 즉시 고문으로 초빙하였던 것입니다. 최근까지 일을 하다 보니 A는 또래의 다른 친구들보다 다소간 경제적인 여유가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작에 직장을 떠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선배에게도, 또 일찍 직장에서 밀려난 후배에게도 식사 대접을 하는 것이 A의 몫이 되고 만 것입니다.

비단 A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나이가 들고 직장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모임과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럴 때 누가 밥 값을 낼 것인가는 별 것 아닌 듯 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날 때마다 번번이 밥을 얻어 먹게 되면 공연히 주눅이 들어 다른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매번 밥값을 내는 입장에서도 한 두 번도 아니고 식사할 때마다 돈 낼 때가 되면 눈길을 피하는 상대방과 함께 하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관계는 내가 한 번 식사 대접을 하면 상대방도 한 번 밥을 사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이 2번 밥을 사고 나서 그 답례로 상대방이 한 번 대접을 한다면 보기에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하여서는 당당하게 식사 값을 치를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그깟 점심 값 한 번도 못 내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퇴한 나이든 분들에게는 자신의 점심 값에 얹어서 다른 사람의 식대를 부담하는 것이 선뜻 나서지지 않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젊어서 직장 다닐 때에는 점심 식사 값을 누가 낼 것인가를 가지고 크게 신경 썼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앞에 예를 들었던 제 친구 A 처럼 예전 상사분들을 만나도, 또 직장 후배를 만나도 내가 점심 값을 내야 하나?’ 하고 조금은 신경 쓰기 시작합니다. 제가 점심 값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운 때도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보다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려는지, 또는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20여년 전 제가 저희 선친 회사의 예전 직원분들께 저녁 식사를 대접한 것이 물론 적은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서울 시내 번듯한 일류 호텔의 부페 레스토랑에서 7 분이 식사를 하였으니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때에 저는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그 정도의 금액을 지불할 만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그러한 점을 뿌듯해 하셨습니다. 그 날 저녁에 제가 식사 값을 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날 모이신 분들 가운데 한 분이, 또는 그 분들끼리 나누어서 식대를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회사의 사장님이셨던 저희 선친과 사장님 사모님이셨던 당신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먼저 식사를 한 번 내고 싶어하셨던 것입니다. 그 때 제가 식사를 대접한 1년 뒤 저는 미국으로 출국하여 더 이상 저희 선친 회사의 예전 직원분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전해 듣기로는 그 후 몇 번인가 점심 식사를 함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식사 때마다 모든 분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나 여러 분들이 돌아가면서 저희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제가 먼저 저녁 식사를 한 번 대접한 덕에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그 분들이 대접하는 점심 식사를 함께 하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 은퇴 전의 젊은이들에게 제가 감히 충고합니다. 지금이라도 아끼고 절약하여 노후에, 은퇴 후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 예전 직장 상사나 후배를 만났을 때에 반가운 낯으로 거리낌 없이 식사 한 번 번듯하게 대접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조언합니다. 지금은 별 것 아닌 금액도 은퇴 후에는 조금씩 부담스러워 질 수 있다는 저의 충고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나이 들고 은퇴하신 분들도 이따금 예전에 대접을 받았던 분들과 함께, 너무 거창하고 비싼 곳은 피하시고, 편한 곳으로 함께 가셔서 식사하십시오. 그리고는 직접 점심 값을 한 번 먼저 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러면서 지나간 시간들의 이야기 꽃을 피워 보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