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중반에 국내 월간 잡지에 게재된 기사 가운데 이런 제목이 있었습니다;
“연금 지급액 유지 주장은 정부의 ‘폰지사기’” (관련기사: 정부의 폰지 사기)
정부가 폰지사기를 하다니? 국민에게 정부가 폰지사기를 한다는 것은 표현이 과격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기사를 그냥 읽고 흘려 보낼 수도 있었으나 시간을 두고 곰곰이 다시 읽어 보게 됩니다.
특별히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래의 복지는 암묵적 자산, 금융자산, 가계자산, 개인자산 등 네 가지에 좌우된다.’
암묵적 자산이란 각종 연금 등으로부터 기대되는 수혜적 가치를 말하며, 금융자산은 그야말로 현금, 예금, 주식 등 금전적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산을 말합니다. 가계자산이란 주택, 자동차, TV, 의복, 각종 살림살이 등 생활을 꾸려 나가는 데에 필요한 자산입니다. 끝으로 개인자산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기술, 건강 등입니다.
이 모든 자산이 풍족하다면 은퇴 후의 노년 생활은 걱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노후 자산에 대하여 걱정 없이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큰 걱정이 없겠지만 적게 가진 사람은 걱정이 없을 수 없고, 미리미리 계획을 잘 세워 부족함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기사의 분류에 의하면-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기사에서 인용한 미국 보스턴 대학의 로렌스 코틀리코프 (Laurence Kotlikoff)교수의 분류에 의하면 국민연금은 암묵적 자산에 해당됩니다. 암묵적 자산인 국민연금의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국민연금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머지 않은 장래에 기금이 고갈하여 지급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기사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수명은 늘어나고 출산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국민연금 수혜자는 계속 늘어나고 연금을 불입하는 젊은 층은 점점 줄어들게 되어 기금의 고갈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연금 지급을 개시하는 정년이 65세인 유럽 국가들도 늦어도 2030년까지는 이를 67세로 늦출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도 현재 66세인 정년을 2027년까지 1년 더 늦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2023년까지는 수급연령을 65세로 높이는 등의 개혁을 진행하고 있으나 이 것이 과연 충분할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5. 5. 8. 참조)
그 뿐 아니라 최근에도 우리나라의 연금제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기사가 계속 되었습니다. (관련기사: 국민연금 2040년 사학연금, 내 연금 반토막) 사학연금이나 기타 공무원, 교직원, 군인들의 연금들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전국민에게 가장 영향이 큰 것이 국민연금일 뿐 다른 연금들이라고 하여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닙니다.
국민연금은 사회보장이라는 측면과 가입자가 기금을 불입하여 은퇴 후에 연금으로 수령한다는 경제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때에 따라서는 상충하는 가치관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면을 본다면 연금 수령액은 기존에 불입하여 놓은 기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찍이 많은 금액을 불입하였으면 그만큼 연금 지급액도 커질 것입니다. 그 반면 기금 불입금액이 적다면 당연히 연금지급액도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상황이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은 수혜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연금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축적된 기금이 적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의 심리란 누구나 다 비슷하여서 연금기금을 불입할 때에는 가급적 조금만 내고 싶어하고, 시간이 지나 연금 수혜자가 되었을 때에는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경제적인 분석을 해보면 모든 혜택은 기여한 만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입니다. 기금 불입에 기여 금액이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면 후에 연금을 받을 때에 자신의 수령액이 적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기금 불입 금액이 컸던 사람은 연금 수령액이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하여야 할 것은 국민연금은 개인계좌로 운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불입액을 원금으로 그 동안 운용한 수익만큼을 얹어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아니며 국민연금의 운영에 관한 여러 법률과 규정에 따라 전국민으로부터 기금을 불입 받고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수혜자에게 연금을 지급합니다. 따라서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부서에서는 개인별 계좌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는 자산 전체를 하나의 계좌로 인식하여 운용합니다. 그리고 그 자산으로부터 발생한 수익과 관계 없이 법률과 규정에 의하여 지급하도록 정하여져 있는 금액을 연금 수혜자들에게 지급합니다.
이러한 연금 운용 방식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설사 기금운용을 통하여 충분한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연금 수혜자에게 이미 약정된 금액을 지급하여야만 합니다. 얼핏 들으면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궤변 같으나 현실은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국민연금이 설계 되어 있습니다. 기금 운용으로부터 수익이 얼마가 나든지 그와 상관 없이 연금은 지급됩니다. 혹시라도 기금 운용을 성공적으로 하여서 예상한 수익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하더라도 연금 수혜자들에게는 아무런 추가적인 혜택이 없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기금 운용을 성공적으로 하여 예상한 수익보다 추가적으로 수익을 많이 올리게 되면 기금을 운용한 담당자에게는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반대로 예상보다 수익을 적게 올렸다고 하여 담당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설사 충분한 수익을 올리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기금 운용의 성과와는 관계 없이 연금은 지급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구조 때문에 오늘의 기사에서 ‘정부의 폰지 사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폰지라는 것은 흔히 윗 돌을 빼서 아랫돌 막기라고도 하고, 제 꼬리 배당이라고도 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2. 2. 10. 참조) 나중에 불입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불입한 사람들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것이 폰지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이 수익을 제대로 내어서 수익금으로 연금 수혜자에게 지급할 금액을 충당한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국민연금의 구조는 그 것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애당초 처음 국민연금을 설계할 때부터 연금 수혜자 자신이 불입한 금액으로 스스로에게 지급할 금액을 충당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소위 소득대체율이 초기에는 70%까지 지급하도록 설계하였던 것이 무리였습니다. 후에 이를 현재의 46%까지 낮추는 데에는 상당한 저항이 있었고, 현재의 계획대로 2028년까지 40%로 (금요일 모닝커피 2015. 5. 8. 참조) 낮추려면 또 다시 거센 저항을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미국식 개인 연금계좌제도를 도입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사회보장제도 (Social Security)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유사하게 정부가 정해놓은 룰에 따라 세금을 걷듯 불입하고 일정 연령이 도달하면 (현재 규정에 따르면 만 62세 또는 만 66세) 사회보장 규정에 의한 금액을 다달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사회보장제도에 노후를 의지하겠다는 생각을 크게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사회보장제도에 따른 수혜 금액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적습니다. 따라서 노년에 대비한 연금은 주로 개인 퇴직 계좌 (IRA: Individual Retirement Account) 또는 401k (미국 소득세법에 의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 근로자의 연금제도) 등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러한 퇴직 연금 자산은 각 개인별로 구분되어 있어 은퇴후 자신의 연금계좌에 쌓여 있는 연금자산에서 인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연금 자산이 얼마인지 스스로 알고 있으며, 그 자산을 형성하는 과정을 스스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다달이 불입한 금액, 불입한 자산을 어디에 투자하여 어떤 결과를 얻어냈는지 소상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자산 운용에 대한 의사결정을 스스로 하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연금 자산을 운용하는 데에 필요한 조언을 구하기 위하여 전문가(Financial Adviser)의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제도가 실질적인 노후 생계 대책으로서의 기능이 약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보완으로 개인 연금 제도에 미국식의 세제 혜택을 늘려가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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