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2019. 1. 11.

jaykim1953 2019. 1. 11. 12:17



지난 주말 저는 서울을 떠나 이 곳 남부 캘리포니아로 왔습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천 국제 공항을 둘러 보다가 우연히 젊은 부부가 아직 어려 보이는 두 어린이를 데리고 올망졸망 짐을 든 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3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추세입니다. 그 이전에는 온 가족이 공항으로 나오는 경우란 커다란 이민 가방을 여러 개 들고 나와서 해외로 이민을 떠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듭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었던 초기에 있었던 신문기사를 찾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관련기사: 1983_2_12_경향신문 사설- 해외여행 패턴을 바꾸자)사설로 이야기하여야 할 수준의 문제로 인식되었습니다. 이 때 지적한 고쳐야 할 행태의 첫 번째는 해외 여행의 목적에 맞는 여행을 하자는 것입니다. 외화의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출영객 문제입니다. 기사 내용 가운데 과거처럼 만세 삼창 부르고 찬송가 부르는 일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출영객 숫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글로 유추해 보면 그 때보다 더 이전에는 출영객들이 해외 여행 나가는 사람을 둘러 싼 채로 만세 삼창을 부르고, 찬송가를 불렀었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며 듣는 이야기이지만, 한 때는 2 3일 또는 3 4일 동경 출장 가는 신도를 송영하기 위하여 목사님이 공항까지 나가서 기도하고 여러 신도들이 모여서 찬송가를 부르던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 쪽에서는 이민 떠나는 가족을 둘러 싸고 일가 친척이 모여서 눈물로 떠나 보내기도 하였었습니다. 눈물 바다를 이루면서도 이민을 떠나는 사람은 시원섭섭함을 느꼈었고, 출영 나온 사람들은 이민 떠나는 사람들을 조금은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이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것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제가 6~7세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저의 선친께서는 반도호텔에 사무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반도호텔은 미군 휴양시설이어서 일반인은 출입이 허용되지 않고 미군들과 반도호텔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음식값도 미국 달러화로 표기된 미군 군표로만 지불하여야 하였습니다. 반도호텔에 사무실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군 군표를 따로 팔았었습니다.

그 당시에 반도호텔의 커피 숍에서 일하던 한국 사람 B 씨가 있었습니다. 그는 눈치가 빠르고 일을 열심히 잘하여서 호텔 지배인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 지배인의 추천으로 B씨는 미국 본토의 미군 시설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B씨는 제가 살던 신당동에서 멀지 않은 곳인 약수동 산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하시는 저희 선친을 따라서 저희 모친과 제가 함께 차를 얻어 타고 외출을 하던 길이었습니다. 문 앞에서 B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깊이 숙여 저희 선친께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인사를 받고 지금 출근하는 길인가 물으시고 차의 앞 자리에 타라고 하셨습니다. 어차피 저희 선친께서도 반도호텔로 출근하시는 길이었으니 B씨를 태워 주신 것입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B씨가 미국에서 취업하기 위하여서는 손님의 추천서가 필요하였었다고 합니다. 직장 상사의 추천서는 그를 새로운 직장에 알선하여준 지배인이 써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손님의 추천서를 받는 것은 쉽지 않았었던 것입니다. 마침 커피 숍에서 B씨는 저희 선친을 자주 뵈었습니다. 그리고 손님들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시는 저희 선친을 보고 B 씨는 저희 선친께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추천서를 부탁 드렸던 것입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셨다고 합니다. B씨의 취업이 결정되고 결국 B씨는 취업 이민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B씨가 저희 선친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아침 일찍 저희 선친의 출근 길에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인사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B 씨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저희 선친께 인사를 드리려 왔다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B 씨는 저희 선친께 계속 고맙다는 인사를 그치지 않았고,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였습니다.

제가 중, 고등하교 시절에 불현듯 B씨 생각이 났습니다. B씨가 이민을 떠난 지 10년 정도 지난 때였습니다. 저희 선친께 혹시 B씨와 연락이 닿는지 여쭤 봤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웃으시면서,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다는 생각은 마음 속으로만 하고 입 밖으로는 내는 것이 아니다. 말로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다는 사람은 대부분 오래지 않아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는 사실을 잊게 마련이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그런 말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 들은 그 말을 잘 잊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뜻 밖에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누구에게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하였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B씨의 나이도 지금쯤은 70은 훌쩍 넘어 80 대 중반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B씨가 저에게 연락을 할 이유도 없고 또 할 방법도 없겠으나, 문득문득 그 분이 어떻게 지내 왔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195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간 초기 이민자의 생활은 모두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민을 떠날 당시의 서울 생활보다는 여러 가지로 풍족하기야 하겠으나,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크게 나아졌다고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60~70년대까지만 하여도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 사람들이 돈을 벌면 가장 먼저 캐딜락 자동차를 샀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동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한국의 친척, 친지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캐딜락 자동차를 타고 다닐 만한 형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으로 이민간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캐딜락을 타고, 스스로 성공하였다고 한국에 있는 친척과 친지들에게 알렸던 사람의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신세 진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을 만한 경제적, 정신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그 분들 가운데 한국을 떠나면서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고마움을 표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으로는 은혜에 보답하고 싶기도 하였겠지만 현실적으로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유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신용불량자들의 경우에도 유사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평하기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하는데도 빚을 제대로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빚쟁이를 피해 다니는 사례가 비일비재 합니다. 신용불량자도 마음 속으로는 빚을 다 갚고, 돈을 빌려준 데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자에 감사의 마음을 얹어서 돌려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였던 것일 뿐입니다. 신용불량자가 결코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동안 누적된 사례가 수 없이 많았기에 금융기관에서는 대출을 해 주거나, 여신을 제공할 때에 고객을 잠재적인 신용불량자 취급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를 불쾌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돈을 빌리는 사람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금융기관에게 문서로 확인해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담보는 물론이고, 법적인 조치를 즉시 취할 수 있는 필요 서류를 미리 받아 놓습니다. 사적인 사이에는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인감증명서를 첨부 시켜서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다는 약정서를 문서화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금융기관에서는 평생 잊지 않을 것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그저 반드시 빚을 갚도록 약속을 받아 냅니다.

사람의 말과 약속은 지켜지고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니만큼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신중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 이야기하면 그 말을 지키도록 각별히 노력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