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2019. 2. 28.

누구나 평소에는 잊고 지내지만 조금은 특별한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중학교 2학년 때의 음악 선생님이 그렇습니다. 그 선생님의 존함은 ‘조념’ 선생님입니다.

조념 선생님은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작곡가셨고, 바이얼린 연주자로서도 상당히 존경 받는 분이셨습니다. 다만 6.25 전쟁 전 좌경화된 활동을 하였다는 경력 때문에 변변히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생활고를 겪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저희 학교에 음악 선생님으로 부임하셨습니다.

그 분의 작품 가운데 잘 알려진 곡은 ‘보리피리’입니다. (관련 영상: 보리피리_조념) 보리피리는 상당히 서정적인 곡이라는 평을 받았고 오래 동안 그 분의 대표곡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곡은 보리피리보다 한참 후에 작곡한 ‘녹두꽃’입니다. (관련 영상: 녹두꽃_조념) 이 곡은 정통 클래식 음악가들은 거의 연주하지 않았고 운동권 사람들에게 주로 불렸습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저항을 상징하는 노래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노래의 작사가가 저항시인 김지하라는 것 때문으로 보입니다.

조념 선생님의 사상이나 정치적인 성향에 대하여서는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젊은 시절에 좌경 성향을 보였었으나 6.25 전쟁을 거치면서 월북하지 않고 남한에 남으면서 일종의 사상전향을 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비록 사상전향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소위 전불- 전과불순(前科不純)이라 하여 사회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 분이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생활고를 겪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조념 선생님은 저희들에게 열심히 음악을 가르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곡으로 꼽는 ‘동심초’ (동심초_쏘프라노 신영옥)는 제가 중학교 2학년 시절 음악 시간에 조념 선생님께서 LP판으로 음악을 틀어 주시면서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 곡입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가슴이 찡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런데 철 없던 마음에 혹시라도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눈물을 흘린다고 놀릴까 봐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무심하게 앉아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또 한 곡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사우’ (思友- 동무생각)입니다. (동무생각_메조 백남옥) 이 노래를 가르쳐 주시며 고음부와 저음부로 나누어서 화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에 맞춰 노래 부르는 것을 가르쳐 주시느라 애쓰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평소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 또 한 분의 선생님이 계십니다.

제게 금융에 관한 철학과 원칙을 심어주었던 멘토 타운센드 워커 박사 (Dr. Townsedn Walker)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5. 2. 17. 참조) 이 분과는 아주 가끔 연락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주로 이메일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요즈음 샌프란씨스코 북쪽에 있는 샌 퀸튼 주(州) 교도소 (San Quentin State Prison)에서 창의적인 글쓰기 강연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웹 사이트에도 이런 활동 상황을 간단히 피력하여 놓았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http://www.townsendwalker.com/about 참조)

이 분은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자신이 개발한 방식으로 리스크 관리에 대한 강의를 하였던 분입니다. 리스크 관리에 관련된 책도 여러 권 쓰셨으며, 국제 금융기법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금융의 원칙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계셔서 편법이나 변칙적인 방법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비판을 하셨습니다. 다만 원칙을 지키고 결과가 같아진다면 거래 당사자들끼리 합의하에 손쉬운 방법을 이용하는 것 정도는 용인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특정한 날에 어느 한 은행과 외환 수도가 여러 건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각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도 금액을 모두 합산하고 상계하여 차액만 주고 받도록 하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이러한 결제 방법은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고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이라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이 분도 평소에는 제가 무심하게 잊고 지냅니다. 그런데 새해 들어서 이 분과 새해 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 분이 새롭게 교도소로 강연을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은행에서 돈을 잘 벌고, 손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하는 방법을 강의하였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강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 좋은가를 연구하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돈과는 전혀 관계 없이 한 순간 잘 못으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글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제가 기억하는 타운센드 워커 박사는 정확한 거래 내용의 파악과 그 거래에 수반되는 리스크의 분석, 효과적인 관리 방법 도출 등에 능통한 분이셨습니다. 새로운 금융 상품이 소개되면 타운센드 워커 박사는 그 상품이 기존의 어떤 상품들을 결합하고 분해하여 만들어 낸 상품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관계되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에 따른 리스크를 파악하여 알려주고, 각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비용을 꼼꼼하게 계산하여 알려 주었습니다. 타운센드 워커 박사가 분석하여 알려주는 새로운 상품은 알기 쉽게 이해가 되었으며, 가격 메커니즘도 어렵지 않게 계산 방법을 파악할 수 있었고,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하여야 할 것인지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있을 것입니다. 제게는 어린 시절 감성적인 음악을 접하고 이해하게 만들어 주셨던 은사님- 조념 선생님이 계셨고, 성장하여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제가 하는 업무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멘토- 타운센드 워커 박사가 계셨습니다. 조념 선생님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조념 선생 타계 참조) 타운센드 워커 박사는 아마도 80대 초~중반이 되셨을 것입니다. 아직 살아계실 동안에 타운센드 워커 박사에게 이메일이라도 가끔 보내 드리도록 하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