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에 근무하던 1981년 여름 6개월 예정으로 동남아 및 일본으로 연수(on-the-job training)를 떠났습니다. 제일 먼저 싱가폴에서 3개월 남짓 근무하면서 연수를 받았고, 그 다음으로 홍콩에서 약 한 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의 토쿄에서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의 싱가폴이나 홍콩 또는 토쿄는 우리나라의 외환, 자금 시장에 비하여 엄청나게 자유화 되어있었고, 거래량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제가 처음 싱가폴에 도착하여 외환 트레이딩 룸(trading room)의 한 구석에 앉아 브로커의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거의 얼어붙은 듯이 어찌할 바를 몰랐고, 옆에 있던 다른 트레이더들의 도움 없이는 브로커의 전화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트레이딩 룸의 분위기와 업무를 익히면서 브로커의 전화도 능숙하게 받았고 거래에 필요한 시장 가격을 묻는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on-the-job 트레이닝의 효과를 보았습니다. 하루하루 트레이더들의 일과를 옆에서 보고 배우면서 저도 이런 저런 트레이딩 관련 업무에 익숙해졌습니다.
싱가폴에서 3개월을 보낸 다음 홍콩에서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싱가폴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에는 제가 외환, 국제 금융 시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던 것에 비하여 홍콩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그래도 3 개월 남짓 싱가폴에서 외환, 국제 금융 시장 현장에서 적지 않은 실무 경험을 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트레이딩 룸에서 바로 트레이더들의 업무를 도와주기도 하고 브로커들과도 스스럼 없이 통화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처음 싱가폴에서 경험하였던 외환, 국제 금융 시장과 홍콩의 외환, 국제 금융 시장을 비교하기도 하였습니다. 두 시장의 근본적인 차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애써 찾아 본다면 싱가폴에서는 대부분의 트레이더와 브로커들이 영어로 거래를 하는 반면 홍콩에서는 적지 않은 트레이더들이 중국어- 특히 광동어(廣東語, Cantonese)를 사용하였습니다. 시장 규모는 그 당시에는 두 시장의 크기가 비슷하였습니다.
저는 그때로부터 40 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 당시에 제가 경험하며 배웠던 국제 금융과 외환 시장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보고 들었던 자유 금융 시장이었던 것입니다. 싱가폴과 홍콩은 아시아의 국제금융 중심지라는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듯하였습니다. 두 시장 모두 가급적 규제를 줄이고 자유로운 거래를 장려하였습니다. 싱가폴은 자국의 통화량이 크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세계적인 금융기관을 유치하기 위하여 ACU (Asian Currency Unit, 금요일 모닝커피 2023. 12. 22. 참조)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홍콩과 경쟁하였고,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이면서 영국의 자유 경제 시장원칙을 그대로 받아들여 제약 없는 자유 경쟁 시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 홍콩이 영국의 손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그 이후의 홍콩은 많은 변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홍콩이 비록 중국이라는 나라에 예속되지만 경제와 관련된 제도만큼은 자본주의를 표방하겠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하겠다고 중국은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초기의 약속은 점점 퇴색하고 이제는 ‘홍콩은 중국의 일부’임이 확연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금융기관의 영업은 위축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나 국제 금융 분야는 점점 더 위축되고 관련 분야의 인원과 규모는 자꾸 축소됩니다. 그 결과 직원들을 해고하는 금융기관이 많아졌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관련기사: 아시아 금융 허브 홍콩이 어쩌다가…직원 줄줄이 해고-hankyung.com- 2024. 3. 25.)
언뜻 보기에 홍콩은 중국에게 눈엣 가시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자칭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공산주의 경제를 영위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는 홍콩이라는 존재는 마치 사회주의 경제의 누수(漏水)를 야기하는 지점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존재가 중국 고위 지배층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음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홍콩의 존재는 중국 고위 지배층의 부패를 숨겨둘 수 있는 곳으로 부각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각종 부정행위로 모은 부정한 재산을 홍콩의 금융 시장에 저장하여 놓는다는 것입니다. 일부 부패한 중국의 고위관리들은 자신들의 정부(情婦)를 홍콩에 머무르게 하면서 정부의 명의로 금융기관에 계좌를 열고 자신이 거두어들인 부정한 재산을 그 곳에 숨겨 놓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흉흉한 소문은 홍콩의 금융시장에 대한 시각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지금 전세계의 정세는 미국이 여러 분야에서 중국을 윽박지르는 듯이 보입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고 대만을 위시한 동남아의 군사적 위협에 미국이 엄중히 대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확인된 바는 없으나 부패한 중국의 고위관리들이 자신들의 부정한 재산을 숨겨 놓는 목적으로 홍콩을 이용한다면 미국을 위시한 자유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홍콩에 소재하는 금융기관의 거래에 감시의 눈초리를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저도 이미 여러 번 중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22. 12. 2. 참조) 이런 시각이 저만의 소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중국에 대한 핑크빛 환상은 많이 깨어졌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 정부가 큰 소리 치던 일대일로(一帶一路)조차도 그들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음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22. 10. 21. 참조)
중국이 홍콩을 합병하면서 국제사회에 굳게 약속하였던 일국양제가 처음 약속하였던 대로 지켜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이제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중국은 스스로 믿을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이 지배하는 홍콩이 과거에 누렸던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라는 영광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1981년 처음 국제 금융시장의 중심지로서 홍콩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홍콩이 보여주는 모습은 몹시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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