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DADVICE - 2021. 6. 25.

jaykim1953 2021. 6. 25. 06:00

저는 지금 미국 네바다 주(州) 라스베가스의 남쪽에 있는 헨더슨 (Henderson) 시(市)에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6월 20일)은 이 곳 미국의 아버지 날 (Father’s day)이었습니다. 매년 6월의 셋째 일요일이 아버지의 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날이라 하여 부모님 모두를 한꺼번에 기념하는 날로 삼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어머니날은 5월 둘째 일요일이고, 아버지 날은 6월 셋째 일요일로 나뉘어 있습니다

아버지 날에 즈음하여 TV에서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한 TV 토크쇼에서는 시청자들이 참여하는 이벤트로 ‘#DADVICE’ 를 보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관련 방송 동영상: The Tonight Show_Jimmy Fallon#hashtag_#DADVICE) DADVICE는 ‘dad + advice’ 를 말하는 것으로 ‘아버지가 내게 준 충고’를 해시태그(#)를 하여서 보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들이 올라왔습니다. 예를 들면, ‘운전을 정말 잘하는 사람은 브레이크를 쓸 필요가 없단다. 너도 운전할 때 브레이크를 쓰는 횟수를 줄여라.’라는 말도 있었고, 또 우스운 이야기로는 ‘주택대출 상환금보다 차량 대출 상환금을 우선 갚아라, 여차하면 차 안에서 잠을 잘 수 있지만 집을 운전하여서 일하러 갈 수는 없단다.’라던가, ‘차에서 잡음이 들리면 라디오 볼륨을 올려서 그 잡음이 들리지 않게 하면 신경이 안 쓰인다.’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또 조금 심각한 내용으로는, ‘냉장고 문을 열기 전에 냉장고에서 무엇을 꺼낼지 미리 생각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라. 냉장고 문을 연 채로 무엇을 꺼낼까 생각하지 마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TV 토크쇼이다 보니 일부는 그야말로 재미 삼아 우스갯꺼리 이야기를 보내온 사람도 있었으나 나름대로 교육적인 내용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제 자신의 경우 저의 선친께서 제게 해주신 어떤 DADVICE가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이미 돌아가신지도 38년이 지났으니 저희 선친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흐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제가 어린 시절 저희 선친께서 해 주셨던 말씀 한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옛 말에 독서백편(이면) 의자현(이라)는 말이 있다’라는 가르침이셨습니다.

한자로는 讀書百遍 義自見이라고 쓰고, 그 뜻은 글을 백번 살펴서(遍) 읽으면 그 뜻(義)이 스스로(自) 드러난다(見)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쓰인 한자 見 자는 두 가지로 읽힙니다. (1) 볼 견, 또는 (2) 드러날 현,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이 글에서는 뜻이 드러난다는 의미로 '현'이라고 읽어야 옳습니다.

저희 선친 말씀에 따르면, 옛날 어느 선비가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선비의 아들이 글을 읽으면서 '독서백편이면 의자견이라'라고 소리 내서 읽더랍니다. 그래서 “저 글은 '의자현'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지금은 내 갈 길이 바쁘니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알려 줘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때 집에 들어오면서 문간에서 들으니 그의 아들이 '독서백편이면 의자현이라'라고 제대로 읽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비가 무릎을 탁 치면서 '역시 뜻을 살피며 글을 백 번 읽으니 그 뜻이 저절로 깨우쳐지면서 옳게 읽게 되는구나' 했더라는 것입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이 이야기를 제게 해 주시면서 무슨 말이든지 한 번 읽어서 그 내용을 잘 모르겠거든 깨우쳐질 때까지 계속 읽어 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꼭 백 번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뜻이 깨우쳐질 때까지’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요즘 젊은이들 같으면 인디언 기우제냐고 되물을 것입니다. 인디언 기우제가 늘 성공하는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드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뜻을 깨우칠 때까지 읽으라는 것이나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리는 것이나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도 제게 말씀하신 것은 참을성 있게 꾸준히 읽어서 뜻이 깨우쳐질 때까지 읽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첫 직장으로 Bank of America 서울지점에 처음 출근하던 날 제게 두툼한 책이 주어졌습니다. 겉표지에는 Standard Practice Manual이라고 씌어 있는 은행의 각 분야별 교과서였습니다. 내용은 당연히 영어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은행에 첫 발을 내디딘 사회초년병으로서 은행 업무와 금융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은행 실무에 관한 교본을 받았는데 모두 영어로만 씌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난감하였습니다. 우리말로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준다고 하더라도 알아들을까 말까 한 상황인데 모두 영어로만 씌어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때 제게 떠오른 말이 저희 선친께서 말씀해 주셨던 ‘讀書百遍 義自見’입니다.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그 말이 이해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금씩 책의 내용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와 함께 입행하였던 동기 행원들이 7 명 있었습니다. 정상적으로 학교의 추천서를 받고 입행 면접을 치른 사람이 6 명 있었고, 한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가 하는 사업과 연계하여 Bank of America의 고위층을 알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쉽게 입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입행 6 개월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아버지 사업을 통하여 입행한 친구는 은행을 떠났습니다. 그가 떠나면서 이야기하였던 짧은 불만이 있었습니다. 처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저희 같은 신입행원에게 좀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의 교과서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불만이었습니다. Bank of America에서 나누어 준 Standard Practice Manual은 추상적이고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관찰한 바로는 그 친구는 Standard Practice Manual을 열심히 읽지 않았습니다. 대강 제목만 훑어보면서 그 Manual을 먼저 읽어 본 동료나 선배 직원에게 내용을 물어보기 일쑤였습니다. 그는 저에게도 여러 번 질문을 하였었습니다. 그에게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느꼈던 것은 ‘이 친구는 학교 다닐 때에도 교과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시험공부를 하였던 스타일이로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는 Standard Practice Manual 이 추상적이고 우리나라 현실에 안 맞는다고 불평하였지만, 저는 오히려 금융이 어떠해야 하는지 Standard Practice Manual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실은 저도 처음에는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여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그러나 읽고 또 읽으면서 겨우겨우 조금씩 파악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꾸준히 공부하면 은행의 업무를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현업에서 실무를 하는 선배 직원들과 이야기해 보면 Bank of America의 standard Practice Manual과 우리나라의 금융 현실이 어떻게 차이가 나고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도 어렴풋이나마 알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 한 두 번 읽어 보고 내용이 파악되지 않는다고 책을 덮을 것이 아니라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읽고 또 읽어서 그 뜻을 알게 될 때까지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제가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Bank of America 에서 배웠던 가장 기초적인 개념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1. 12. 30. 참조)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에는 학교에서 금융에 관하여서는 특별히 공부한 적도 없었고, 금융 관련 과목은 더구나 학교 교과목 가운데에서 찾기 어렵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잘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Bank of America에서 제 손에 쥐어 준 Standard Practice Manual을 더 열심히 읽고 공부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백 번씩 읽어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Standard Practice Manual을 열심히 읽었던 덕분에 학교 성적도 별로 좋지 않고,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았던 제가 오늘까지 금융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금년 아버지 날에 멀리 미국의 헨더슨 시에서 제가 기억해 낸 DADVICE 는 讀書百遍 義自見입니다. 반드시 백번을 읽는 것이 아니라 뜻을 깨우칠 때까지 열심히 읽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