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노인 폄하- 2023. 8. 11.

jaykim1953 2023. 8. 11. 06:30

지난 주에는 정치권 인사 사람의 발언이 평지풍파를 일으켰습니다. 언론에서 노인 폄하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관련기사: “‘노인 폄하 발언’…‘흔들림 없는김은경-mk.co.kr-2023. 8. 5.) 이미 언론에서 다양하게 다루었으므로 사건의 내막은 대부분 알고들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사건을 보면서 생각은 만약 이런 발언이 외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노인을 폄하하였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여당에서는 고려장이라는 단어까지 들먹이며 강하게 비난하였습니다. 이후로는 해당 인사의 시누이, 아들로 이어지는 일종의 폭로전과 해명이 뒤를 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미국에서 이런 발언이 나왔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났을 것인지 추측해 보았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인종의 다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Melting Pot- 2021. 8. 20. 참조)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문화, 관습을 존중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일찍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여하 차별도 있어서는 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차별이 인종 차별이 있습니다. () 차별, 학벌 차별, 사회적 약자, 종교, 국적 등에 의한 차별이 민감한 사안들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흑인 여성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이혼한 상태인 이슬람교도의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민 사람이라면 직원은 웬만큼 근무성적이 나빠서는 결코 해고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흑인이기 때문에 인종 차별, 여성이므로 성차별, 고졸이므로 학벌 차별, 이혼녀이므로 사회적 약자 차별, 이슬람 신도에 대한 종교적 차별, 이민자에 대한 국적 차별 등으로 인하여 섣불리 해고하였다가는 이러한 차별이 아닌 정당한 해고임을 명백히 증명하지 못하는 순간 회사는 처벌 대상이 것입니다. 고용차별금지법(Equal Employment Opportunity Act) 따라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된다는 공감대가 전반적인 사회에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별 금지 가운데 연령에 의한 차별(Age discrimination)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일자리마다 정년이 정하여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는 정년을 정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또래의 친구들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수를 지냈던 친구들은 대체로 여러 전에 65세에 은퇴를 하였고, 일부 유능한 교수들은 석좌교수, 특임교수 등의 이름으로 정년을 일부 연장하기도 하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나마도 이제는 70세가 되면서 모두 자리를 내놓고,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만이 현직 교수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 교수로 임용되었던 친구들은 대부분 아직까지도 현역 교수로 활발히 일하고 있으며 물러날 생각 없이 앞으로의 연구 수행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나이 70 되어도 대학교수가 은퇴하지 않는 것은 교수의 정년을 일정한 나이로 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은 나이에 의한 차별의 대표적인 케이스이므로 정년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직장의 정년을 정하는 것도 나이에 의한 차별이라 하여 법으로 금지하는 실정인데 이런 미국 사회에서 만에 하나 나이 사람들은 남은 미래가 상대적으로 짧으니 투표권 행사에 차등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는 논리를 피력하였다면…. 이런 논리를 피력한 사람은 아마도 즉시 노동부 (Department of Labor) 혹은 평등 고용 기회 위원회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불려가 법적인 제재와 처벌을 각오하여야 것입니다. 아울러 그런 생각을 갖게 것은 사회에 적응하는 데에 많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여 법원으로부터 사회적응을 위한 특별 교육 이수를 명령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처럼 당사자가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의도가 잘못 해석되었다고 한다든가, 자신이 의도한 발언을 언론이 왜곡하였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오히려 가중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일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표현의 이해력을 오히려 폄하하였다는 비난까지 받을 것입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이와 같은 언급을 하였다면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결코 노인 폄하라는 식의 논리를 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편향된 나이에 의한 차별이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영어로 ‘Biased age discrimination’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남편 사후 18 동안 시부모를 모셨느냐 여부를 문제 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부모와 사이가 좋고 나쁨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치부할 것입니다. 주요 논점은 나이를 기준으로 차별하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심히 우려하고 비판할 것입니다.

구태여 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그녀의 발언 자체가 일반 상식으로 보아도 문제가 많음은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논리와 다르게 동안 나라를 세우고 가꾸어 가는 데에 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붓고 애썼던 공을 생각한다면 젊은 사람들 보다는 나이 사람들이 () 것입니다. 이러한 공의 크고 작음을 기준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피력하여서 되듯이, 어떠한 논리로도 투표권에 대한 제약을 두어서는 것입니다. 더구나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어린 나이라고 여겨져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 중학생의 생각이라면 말을 들은 부모가 어린 자녀를 제대로 가르쳐서 정상적인 사고를 갖춘 교양 있는 인격자가 되도록 이끌어야 것입니다. 게다가 부모가 교수라고 한다면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므로 설명하고 가르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중학생 아들의 미성숙한 이야기가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생각이 짧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누가 앞으로 미래가 짧은 사람인지는 나이를 기준으로 하여서는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순서대로 나이를 들어가지만, 세상을 떠나는 것은 나이순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 누구의 미래가 짧을 것인지는 아무도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나이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 가운데에서도 일찍이 요절(夭折)하는 사람도 있고, 100 시대라고 불리는 요즈음에는 실제로 100세를 넘겨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나이를 보고 누가 오랫동안 미래를 있을 것인지는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사람 자체를 평가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사람은 엉뚱하게도 나이를 기준으로 앞으로 미래가 짧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노인들에 대하여 가혹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지나간 과거의 행적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도 있고, 학식과 경험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투표권에 관하여서는 이러한 기준을 섣불리 적용하지 말라는 것이 보통선거, 평등선거의 기준입니다. 여하한 경우에도 보통, 평등 선거에 어긋나는 기준을 적용하여서는 안됩니다.

평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공감이 이루어진 평가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시간을 흘려 연습한 운동선수가 타고난 재질이 부족하여서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경우, 그의 연습량을 기준으로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의 기록과 실력을 기준으로 평가하여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여야 것입니다. 사회적 공감은 실력 있는 운동선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연습량이 많다고 하더라도 연습량을 기준으로 국가대표가 수는 없습니다.

정치권의 비정상적인 사고는 동안 여러 곳에서 불거져 나왔었습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국가대표 야구 감독을 국회로 불러내 우승이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일갈하는 국회의원도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손혜원 의원, 선동열 감독 압박... 잡음 들끓어-ksilbo.co.kr-2018. 11. 15.) 그리고 지나간 가격의 움직임을 보고 한국은행 총재에게 금의 매입이 성급하였다고 꾸짖는 국회의원도 있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가격 예측 -2020. 8. 7. 참조) 분야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전문성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상식적인 부분도 함께 공감하여야 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 방식은 함께 사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정치인이라면 더욱 유권자들의 생각과 함께 하도록 하여야 것입니다. 상식이 통하고, 궤변을 늘어 놓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정상적인 세상입니다.